들어가는 말
카를 바르트(K. Barth)는 언젠가 말하기를 “하느님의 삼위일체는 그분의 아름다움의 신비이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영광도 기쁨도(그리고 유머도!) 없는 신, 아름다움도 없는 신을 모시는 것이다”라고 했다. 본성으로 하나이시며 위격이 삼위이시라는 삼위일체 교의는 가톨릭 신앙의 본질적 핵심으로 삼위일체의 신비를 아주 심오하게 잘 묘사한 증언이다. 이것이야말로 실상 이해할 수도, 도달할 수도 없는 신비인 까닭에 결국 이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겐 그들만의 전매특허처럼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삼위일체 신비의 심오함을 알고 삼위일체의 찬란한 아름다움의 매력을 체험하고자 한다면, 삼위일체의 본질을 다소나마 계시해 주는 자신의 고유한 체험뿐 아니라 신적 계시와 교부들의 가르침, 교회의 교도권 그리고 신비가들의 체험을 알려주는 자료들에 의존해야만 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삼위일체의 신비를 자신의 고유한 내적 삶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실제로 권위있게 그러면서 지혜롭게 설명해 준바 있으니, 이는 세례를 받은 모든 이들의 사명이기도 하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선하심과 지혜로 당신을 계시하시고 우리에게 그 뜻하심의 신비를 알려주셨다(에페 1, 9 참조). 하느님의 뜻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모두가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으로 그로 인해 우리는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된다(에페 2, 18; 2베드 1,4 참조).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는 (콜로 1, 15; 1티모 1, 17 참조) 이러한 계시를 통해 충만한 사랑으로 우리를 당신의 친구로 부르셨고(탈출 33, 11; 요한 15, 14-15 참조) 사람들과 어울리시며(바룩 3, 38 참조) 당신과 공동체를 이루도록 우리를 부르시고 받아들이셨다“(계시헌장 2항). 하느님께서 당신의 생명과 세 위격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우정의 친밀성은 순전히 추상적이거나 지적인 사변의 문제가 아닌 결정적으로 실존의 가치를 지닌다.
삼위일체의 실체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삼위일체의 친교에 공유자로 삼아주시는 한 분이시요 삼위이신 하느님의 겸손한 임재(臨在), 곧 구세적이며 공적인 대사건이다. 삼위일체는 무한한 사랑이신 하느님의 무상의 현현(顯現)이시고 우리에게 아버지, 아드님, 성령으로 다가오시어 우리를 설복시키고 우리 안에 잠입하시어 하느님 사랑의 생명을 체험할 수 있을 정도에까지 우리를 들어 높여주신다. 실상 창조로 시작하시어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의 발생과 회복으로 완성을 이루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아드님은 서로 사랑하시며 사랑의 성령 안에서 우리에게 당신의 무한한 사랑인 아가페로써 당신 자신을 생생히 통교하고 계신다. 사랑을 통해, 사랑 안에서 전해지는 이 충만한 생명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 신비에 대한 실존적인 응답을 하도록 자극한다. 그 응답은 인간적인 모든 한계를 뛰어넘어 성령의 힘을 통해 아드님 안에서 아버지와 함께 생명의 나눔인 사랑을 우리가 인격적으로 체험하는 결과로 다른 분(Other)께 자신을 저적으,로 내어드림이다. 간단히 말해 예수님께서는 절박한 사랑에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써 하느님의 내적 생명을 신비와 신적 부자관계를 활성화시켜 우리에게 계시하시며 구원계획의 비밀스러운 의미를 알려주실 뿐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생명에 참여하도록 부르시고,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외아드님의 성혈로 속죄와 구원을 받는 성소의 목적을 지시해 주신다. 이 구원행위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제자매들이 되고 단 한 분이신 아버지의 양자들이 되며 성령에 의해 내적으로 격려를 받아 하느님 가족의 구성원들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적 생활 그 중심부에 삼위일체의 신비를 모신 디종 가르멜 삼위일체의 엘리사벳 수녀의 경우이다. 엘리사벳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단순히 신학적 고찰의 대상으로 삼으려 하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존재 q k로 밑바탕에 스며든 생활한 신앙의 신비로 담아내고자 했다. 예언자로서 엘리사벳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사귀는 사랑의 메시지를 자신의 삶으로 전파하였다.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육화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불타는 사랑과 측량할 수 없는 삼위일체 신비의 노선으로 이끄시는 성령께 대한 그의 순응력과, 영혼의 지성소에서 이뤄지는 그의 신적 통교의 은사를 비롯한 이 모든 것은 엘리사벳을 현대 영성의 교사가 되게끔 하였다.
참된 기도란 하느님을 향한 즉각적인 귀환이고 신앙깊은 영적 깨어남이며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윤리적 행위로 해석되는 끝없는 내적 쇄신이다. 이는 사랑이신 하느님의 정배로 우리의 외적 세계에서 내적 세계(우리의 골방으로 가기, 마태 6, 6 참조)를 향한 영적 여정인 것이다. 엘리사벳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러므로 복되신 삼위일체는 우리가 절대로 떠나서는 안 될 우리의 거처, 우리의 집, 우리 아버지의 집입니다. ... 그래서 우리 는 날마다 이 길로 해서 심연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곳은 바로 하느님 자신이십니다. 사랑의 신뢰로 심연 밑바닥으로 빠져 듭시다, “너울이 너울을 부른다.”(시편 41, 8) 그것은 거기 가장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우리의 무(無)의 심연은 그 자 체가 무한하시고 전부이신 하느님의 자비의 심연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일한 영(靈)을 우리가 함께 나누면, 우리는 삼위일체의 신비의 바로 그 중심부에 주입된다. “주님께서는 우리 영혼 안에 사시기에, 그분의 기도는 우리의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생명의 원천이자 샘이신 그분 곁에서 작은 그릇으로 머물며 끊임없이 그분의 기도와 친교중에 있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무한한 사랑의 물결이 넘치는 가운데, 다른 영혼들에게도 그 기도를 전해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삼위일체의 엘리사벳 수녀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기술한 이 책의 목적은 그의 영성을 구성하는 특징적이고 본질적인 요소들을 원초적이고 인격적 양식으로 설명함으로써 그의 실제 모습을 확증하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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