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지명되어 불림
엘리사벳은 지상에 머물던 짧은 생애 동안 자신이 삼위일체 하느님과 신앙 안에서 대화하도록 불린 존재라는 더욱더 생생한 의식을 심화시켜 갔는데, 이는 세례 때에 받은 이름 속에 어린싹으로 담겨 있었다. 엘리사벳은 세례 때에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하는 뜻의 이름을 받고 영원으로부터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생활방식에 적응하는 특별한 성향을 지니고 살았다. 성령의 이르심에 온전히 순종한 엘리사벳의 응답은 피조물로서의 정체성인 자신의 존재의식과 일치하고 있다.
엘리사벳이 절대자 하느님께 마음을 열어놓음으로써 자아를 충분히 인식하게 되었다면, 마찬가지로 하느님과의 친밀한 합일의 정상에 부름받고 수도자로서의 삶에 전적인 자기 증여라는 응답에도 자아를 인식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엘리사벳의 성소는 삼위일체 하느님과 자기 사이에 우리가 지금까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믿음, 희망, 사랑 안에서의 대화로 드러났다. 늘 일하고 계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엘리사벳의 일상사에서 매순간 하느님의 이르심에 충실할 정도로 그의 잠재성 안에서 완전성에 이를 수 있게 해 주셨다.
영원으로부터 알려지고 예정됨
성 바오로는 구원사의 놀라운 단계들을 다음 몇 구절로 기술해 놓고, 인간을 성장시켜 완덕의 길을 따라갈 수 있게 해주시는 창조주 사랑님의 현존을 다룬 바 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께서는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로마 8, 28-30) 성 바오로의 말씀과 엘리사벳의 깨달음에 의하면, 인간의 성소란 바로 하느님께서 영원히 계획하시고 선택하신 운명의 실현에 지나지 않는다.
“그분꼐서 아셨던 이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그분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는 성 바오로께서 다음 구절을 통해 말씀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분꼐서 그들을 부르셨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삼위의 날인을 받도록 부름받았습니다. ... 다음으로 그분은 당신의 성사들을 통해 그리고 우리 영혼의 ‘밑바닥에서’ 이루어지는 거둬들임 가운데 직접 ‘접촉’하심으로써 우리를 의화시켜 주십니다(십자가의 성 요한, 『영혼의 노래』, 19, 5). ... 마지막으로 그분께서는 우리를 영광스럽게 해주길 원하십니다. ...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느님의 아드님과 일치하는 만큼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피조물 모두 다 영광의 찬미가 되기로 예정된 은총에 들어높이는 엘리사벳의 삶의 여정에서 무상의 특별한 사랑으로 부르시는 하느님과 수도 봉헌으로 부르심에 관대히 응답하는 자신 사이에 신비로운 내적 대화가 전개된다.
가르멜 수녀의 삶은 이렇습니다. 무엇보다 가르멜 수녀는 관상가로서 ... 스승님처럼 희생제물이 되고 또 자신의 삶이 끊임없이 자기를 내어주는 선물이 되도록 그분을 사랑하는 영혼입니다. 또한 가르멜 수녀는 그리스도에 의해 또다른 그리스도로 변모될 만큼 그분께 온전히 속한 영혼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깊은 사랑의 교환을 이루며 그분을 많이 사랑합니다.
성자 안에서 자녀로 예정됨의 묵상으로 피조물에 대한 하느님의 무상의 사랑과 자비를 발견하고부터 엘리사벳의 성소는 더욱더 뚜렷해졌다.
엘리사벳은 종종 거룩함에 이르는 과정에서 자녀로 예정됨과 양자됨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인과관계로 돌아간다.
우린 하느님의 선물로 부자가 됐단다. 우린 하느님의 자녀로 입양되도록 예정된 사람들이야. 그래서 당신 영광의 유산을 상속받을 사람들이야!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으로부터 선택하시어, 우리가 사랑 가운데 당신 앞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해주셨어”(에페 1, 4). 보렴, 위대하신 사도께서는 우리가 바로 이를 위해 “하느님 뜻”에 의해 부름 받았다고 말씀하셔.
이러한 성성(聖性)에 전력하는 디종의 수녀가 자신의 영적 여정을 통해 완성시켜야 할 중요의무는 세례 때 받은 부르심에 일치하여 영광의 찬미가 되는 것이었다.
“‘영광의 찬미’... 그걸 성 바오로에게서 읽었습니다. 저는 그게 이 유배 때부터 영원한 지성소를 고대하며 해야 할 제 성소임을 알아들었습니다.” 그 후 1년 지난 다음 엘리사벳은 똑같은 주제로 되돌아가 자신의 성소를 깨닫기 위해 해야 할 일을 긴 글로 옮겨놓았다.
“Nescvi: 더 이상 나 자신도 모르네”(아가 6, 12). “그분, 바로 그분을 알고 그분의 고통에 참여하며 그분이 겪으신 바로 그 죽음을 죽는 것”(필리 3, 10). 이외에는 더이상 그 무엇도 알고 싶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현존 안에서 아신 이들을 또한 예정하심으로써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신 당신 아드님의 모상을 닮도록 하셨습니다.”(로마 8, 29) 제가 이 거룩하신 모델과 완전히 일치하게 될 때, 저는 그분 안에서 그분은 제 안에서 완전히 변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제 영원한 소명은 완성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이 때문에 ‘시초에(in pricipio)’ “저를 당신 안에서 선택”하셨습니다. 저는 이 소명을 ‘영원 속에서(in aeternum)’ 계속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삼위일체의 품 안에 잠긴 채 끊임없는 그분 영광의 찬미(Laudem Gloriae Ejus)가 될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나중에 쓴 글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정확하게 응답하기 위해 자신이 걸어온 길을 더욱 뚜렷하게 언급한다. “어떻게 이 소명의 품격에 맞게 응답할 수 있을까요? 이게 바로 그 비밀입니다. ‘내게 있어서 사는 것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필리 1, 21; 갈라 2, 20 참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모되어야 합니다.”
당신의 고통을 겪으면서 “아버지의 흠숭자”가 되시고 “아버지께 영광의 찬미”가 되시는 예수님을 뒤따르는 데 있어서, 엘리사벳은 아버지의 뜻에 줄곧 성실하게 순종하신 스승님을 닮기로 결심한다. 그리스도의 영혼-엘리사벳이 선호하던 책-은 가르멜 입회 때에 받은 질문에서 대답하였던 것과 같이, 아버지의 모든 신비를 자신에게 드러내 보여주실 뿐만 아니라, 가르멜 수도자로서의 자기 생활에 방향과 의미와 만족을 제시해 주었는데, 그 모든 표현들이 자기 이름 속에 들어있다. 선택과 예정의 뜻이 들어있는 이 이름은 다가오는 저 세상에서 그 의미에 완전히 도달하게 될 것이다. 엘리사벳은 그 곳에서 “불변하는 삼위일체의 모상에 따라 영원한 현재 속에서 ‘그분 자신으로 인해 늘 그분을 흠숭하며’(시편 71, 15 참조) 언제나 더욱 단순하고 통일된 시선을 통해 ‘그분 영광의 광채’(히브 1, 3 참조)로 변화되면서 또한 흠숭하올 그분의 완전함에 대한 영광의 찬미를 끊임없이 드리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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