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의 마리아 수녀는 이 편지를 읽은 뒤 데레사 수녀에게 다음과 같이 써보냈습니다.
+ 예수님
사랑스런 동생에게 1896년 9월 16일 예수님께 대한 사랑에 불타는 네 편지를 잘 읽었어. 네 언니 마리아는 이런 보물을 지니게 되어서 참으로 행복해. 그리고 자기 영혼의 비밀을 그처럼 보여주어서 사랑하는 작은 딸에게 깊이 감사한단다. 오! 하느님의 사랑의 인장이 찍힌 이 편지에 관해서 너하고 얼마나 이야기하고 싶은지 몰라!
나에 대해서 한 마디 할게. 순교에 대한 너의 엄청난 소원을 보고 복음서에 나오는 청년처럼 어떤 슬픔에 잠겨 있어. 그 소원이야말로 정녕 네 사랑의 증거야. 그래, 너에겐 사랑이 있어. 그런데 나는 안 그래! 너는 내가 나도 바라는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고 결코 믿게 하지 못할거야. 나는 네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두려워하니까! 그건 물론 나는 너처럼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이지.
아! 너는 네가 아무것도 안한다고, 너는 가난하고 가련한 작은 새라고 말하지만, 네 소원들은 어떡하고? 그 소원들을 어떻게 생각하니? 좋으신 하느님은 틀림없이 이런 소망들도 일로 보신단다. 더 말할 수가 없구나. 이 짧은 편지를 오늘 아침에 시작했는데 일 분도 틈이 안 나서 못 끝냈어. 지금은 다섯 시야. 네 대모도 너처럼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을지를 써주면 좋겠어. 하지만 꼭 두 마디로.
내가 받은 편지는 나를 행복하게 하고 또 괴롭게 하는 데 충분하니까. 내가 행복해 하는 것은 네가 얼마나 사랑받고 또 얼마나 특별한 은혜를 받고 있는지 볼 수 있기 때문이고, 괴로워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이 사랑하시는 작은 꽃을 꺾고 싶어하신다는 예감이 들기 때문이야. 아! 이 세상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 마음의 메아리인 네 편지를 읽으면서 그만 울고 싶었단다. 얘기해 줄까? 그럴게. 넌 좋으신 하느님께 홀렸어. 문자 그대로 홀렸단 말이야. 꼭 나쁜 사람이 마귀들린 것처럼. 나도 너처럼 예수님께 홀릴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난 너를 무척 사랑하기에, 어쨌든 네가 나보다 특별한 은혜를 받고 있는 것을 보며 기뻐하고 있단다. 작은 대모를 위해 한 마디 해주기를....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성심의 마리아 수녀에게>
J. M. J. T.
예수님.
사랑하는 언니. 1896년 9월 17일
언니에게 답장을 쓰는 게 난처하지 않아요. 제가 하느님을 사랑하듯이 언니도 그분을 사랑하실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어떻게 하실 수가 있어요? 작은 새의 이야기를 이해하셨다면 그런 질문은 안하셨을 겁니다. 순교하고 싶다는 제 소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 소망들이 제 마음 속에 무한한 신뢰를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사실 이런 소망을 지닌 것을 흐뭇해하며 마음을 놓거나, 그런 것을 뭔가 위대한 것처럼 여긴다면, 그런 소망은 우리를 불의하게 만드는 영적 재산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소망들은 예수님께서 가끔 저처럼 약한 영혼--이런 영혼들이 많답니다--에게 주시는 위로입니다. 그러나 이런 위로를 안 주신다면 그건 특별한 은혜입니다. “순교자들은 기쁘게 고난을 겪었지만 순교자의 임금님은 슬퍼하시며 고난을 겪으셨다”고 하신 신부님(예수회 피숑 신부기 피정 때 1887년 10월 피정 때 하신 말씀)의 말씀을 기억해 보세요. 그래요. 예수님은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치워 주십시오!”라고 하셨어요. 사랑하는 언니, 그런데 어떻게 제 소망이 증거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세요? 아! 제 작은 영혼 안에서 하느님의 마음에 드시는 것은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저는 깨닫고 있어요. 그분 마음에 드시는 것은 제가 자신의 작음과 가난함을 사랑하고 주님이 자비를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것을 보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제 유일하 보화에요. 사랑하는 대모님, 제 이 보화가 언니의 것이 될 수 없다는 말이에요?
언니는 좋으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나 다 참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세요? 언니는 그러시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만일 언니가 고통 속에서 기쁨을 느끼고 고통에 마음이 끌리게 되고 싶어하신다면, 언니가 찾는 것은 언니 자신의 위로입니다. 어떤 것을 사랑하게 되면 고통은 사라지기 때문이지요. 만일 우리가 지금의 마음 상태로 함께 순교하러 간다면, 언니는 커다란 공덕을 쌓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예수님께서 이 마음 상태를 바꾸어주고 싶어하시지 않는 한 틀림없이 아무 공덕도 없을 거예요.
아, 사랑하는 언니, 언니 동생의 말을 알아들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아무 소망도 공로도 없는 약한 사람이 사랑을 불사르고 변화시키는 일에 더 적합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제물이 되고 싶은 소망은 그 소망 자체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언제까지나 가난하고 힘없는 자로 남아 있는 것을 동의해야 하는데 바로 그게 어려운 일입니다. 시편 저자는 정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먼 데까지 찾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으니까요. 그 저자는 그런 사람을 위대한 영혼들 가운데서 찾아야 한다고 하지 않고 “먼 데서”, 즉 비천함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 빛나는 온갖 것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습시다. 자신의 작음을 사랑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을 좋아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될 것이고, 우리가 아무리 먼 데 있어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사랑의 불꽃 속에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아!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언니가 깨닫게 해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를 사랑에게 인도해주는 것은 신뢰, 오직 신뢰뿐입니다. 두려움은 “정의”에로 이끌어 줄 뿐입니다. 길이 보이니 함께 달립시다. 그래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똑같은 은혜를 베풀고 싶어하십니다. 당신의 천국을 공짜 선물로 주고 싶어하십니다. 오! 사랑하는 언니, 언니가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신다면, 그건 언니가 너무나 위대한 영혼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제가 저 자신을 잘 설명하지 못해서겠지요. 왜냐하면 만일 하느님께서 이 은혜를 언니를 위해 마련햐 두지 않으셨다면, 언니가 그분에게, 그분의 자비로운 사랑에 사로잡히고 싶다는 소망을 주시지 않았을거라고 확신하니까요. 아니 그보다 하느님께선 언니에게 이미 이 은혜를 주셨다고 확신해요. 언니는 자신을 주님께 맡기시며, 주님께서 불태워주시게 되기를 원하고 계시니까요. 좋으신 하느님께서는 이루어주실 수 없는 소망을 주시는 법이 없으시답니다.
아홉시를 치네요. 이제 헤어져야겠어요. 안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나 제가 쓸 수 없는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언니 마음 속에 넣어주실 것입니다.
감사에 넘치는 아이의 작은 마음으로 모든 정을 다해 언니를 사랑하는, 예수 아기의 데레사, rel. Carm. ind.
*여기서 말하는 정의란 죄인에게 보이시는 엄격한 정의를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보이실 그 정의는 아닙니다.(성녀의 주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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