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성심의 마리아 수녀는 동생 데레사 수녀에게 “성녀의 마음의 모든 느낌들을” 그리고 성녀가 자신의 “작은 가르침”이라고 부르는 것을 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성녀는 원장 수녀님의 허락을 받고 1896년 9월 14일과 15일의 자유시간에 이 글을 썼으며, 이 글은 훗날 자서전 11장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편지 186> 성심의 마리아 수녀에게
저처럼 불완전한 영혼이 어떻게 완전무결한 사랑을 지니고 싶다고 바랄 수 있겠습니까? 아! 저의 첫번째 친구이자 유일한 친구이신 예수님, 또한 제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분이시여, 그 신비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왜 이토록 무한한 포부를 위대한 영혼들, 저 높은 하늘을 나는 독수리들을 위해 간직해두지 않으십니까? 저는 겨우 솜털뿐인 가냘픈 새끼새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저는 독수리가 아니지만 독수리의 눈과 독수리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도 못하게 작기는 하지만, 감히 저 거룩하신 태양을, 사랑의 태양을 바라보고 있고 제 마음은 모든 독수리들의 포부를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새는 눈을 매혹하는 저 빛나는 태양을 향해 날고 싶어합니다. 형제 독수리들을 본떠 성 삼위일체의 거룩한 불에까지 날아가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작은 새가 할 수 있는 것은 작은 날개를 펴보는 게 고작이고 날지는 못합니다. 그건 작은 새의 조그만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작은 새는 어떻게 할까요? 그처럼 무력한 자신을 보고 슬픈 나머지 죽어 버릴까요? 아! 아닙니다. 작은 새는 조금도 슬퍼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담하게 자신을 맡겨버리고, 그의 “거룩한 태양”을 계속 바라보고 싶어합니다. 바람도 비도 그 무엇도 작은 새를 두려워하게 할 수 없습니다. 시커먼 구름이 몰려와 저 사랑의 별을 숨겨버려도, 작은 새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구름 저편에는 태양이 여전히 빛나고 있고 그 빛은 한 순간도 꺼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때로는 작은 새의 마음이 폭풍우에 휩쓸리게 되고, 자신을 덮고 있는 구름 밖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때야말로 이 가엾고 미약한 작은 자가 완전한 기쁨을 맛보는 순간입니다! 거기에 그대로 머물러있는 게 얼마나 행복합니까? 신앙의 눈에도 숨겨진 채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을 꾸준히 바라보는 것은 작은 자에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예수님, 저는 이제까지 작은 새를 사랑해주시는 당신의 사랑을 이해합니다. 그 새는 당신 곁을 떠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이 불완전하고 작은 피조물은 – 비록 지금 있는 자리에 머물고는 있지만(즉, 저 태양 빛 아래 있지만) - 이 유일한 임무에서 조금 마음이 흐트러져 이쪽저쪽에서 작은 싸라기를 줍기도 하고, 작은 벌레를 쫒아가기도 합니다. 그것은 저도 알고 있고 예수님도 알고 계십니다. 게다가 작은 물구덩이를 찾으면 간신히 자란 날개를 적셔버리지요. 또 마음에 드는 꽃을 보면, 그 작은 마음은 그 꽃 생각으로 가득 차 버린답니다. 아무튼, 독수리처럼 하늘 높이 날 수가 없으니까, 가련한 작은 새는 여전히 이 지상의 하찮은 것에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못된 짓을 전부 한 뒤에도, 작은 새는 귀퉁이에 숨어 자신의 가련함을 슬퍼하며 운다든가 죄를 깊이 뉘우치며 죽는 일이 없고, 그 대신 님이신 저 태양에게 돌아서서 그의 젖은 작은 날개를 친절한 빛에 내보이며 “제비처럼 운답니다”(이사 38,14 참조). 그리고 대담하게 완전히 신뢰하며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신” 그분의 사랑을 더욱 듬뿍 받게 될 것을 생각하면서, 그 예쁜 노래로 자기가 성실치 못했던 것을 자세히 털어놓는답니다.
그러나 만일 저 흠숭하올 태양이 이 작은 피조물의 구슬픈 지저귐을 들으시고도 묵묵히 계시면, 계속 구름 속에 숨어 계시면... 그럴 때는 이 작은 피조물은 젖은 채로 지내며, 추워서 마비가 되는 걸 받아들이고, 마땅히 받아야 할 고통을 견디면서 즐거워합니다. 오! 예수님, 당신의 작은 새는 자신이 미약하고 작게 되는 것을 얼마나 행복해하는지요! 만일 컸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결코 당신 앞으로 나아가 그 앞에서 잠들 만큼 대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도 또한 작은 새의 약함의 하나입니다. 저 거룩하신 태양을 바라보고 싶어할 때 구름에 가리어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을 때, 작은 눈은 자기도 모르게 감기고, 작은 머리를 작은 날개 속에 파묻고서 가여운 작은 새는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저 별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며 잠이 든답니다! 잠이 깨었을 때, 작은 새는 그렇게 서글퍼하지 않습니다. 그 작은 마음은 계속 평화롭고, 그는 사랑하는 일을 다시 계속합니다. 작은 새는 그가 그처럼 간절히 바라는 저 태워버리는 불을 향해 독수리들처럼 높이 나는 천사들과 성인들에게 간절히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면 저 독수리들은 자기들의 작은 형제를 가엾게 여겨 보호해주고 방어해주고, 작은 새를 잡아먹으려는 못된 독수리들을 쫒아버려 줍니다. 이 못된 독수리들은 악마인데 작은 새는 그 새들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작은 새는 못된 독수리의 먹이가 되게 되어 있지 않고, 저 사랑의 태양 한복판에서 묵상하는 거룩하신 독수리의 먹이가 되게 되어 있으니까요.
오! 거룩하신 말씀이시여, 당신은 바로 흠숭하올 독수리이십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저를 당신께 끌어당겨 주십니다. 당신은 이 유배지에 내려오시어 영혼들을 거룩하신 성삼위의 영원한 불 한가운데로 이끄시기 위해 고난을 당히시고 죽으시기로 택하셨습니다. 그 후로 영원히 당신의 거처가 될 저 가까이 할 수 없는 빛 가운데로 다시 올라가신 후에도, 당신은 하얀 제병의 모습으로 성체 안에 숨으시어 이 눈물의 골짜기에 여전히 머물러 계십니다. 영원한 독수리시여, 당신은 자신이 거룩한 실체로 저를 길러주시고자 하십니다. 가련한 작은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저는 당신의 거룩한 눈길이 순간순간 생명을 부어주시지 않았더라면 벌써 무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오, 예수님, 제가 감사에 넘쳐서 당신의 사랑은 어리석을 정도라고 말씀드릴 수 있게 해주십시오! 어떻게 제 마음이 당신에게 곧장 뛰어올라가게 되기를 원하시지 않을 수 있으십니까? 어떻게 제 신뢰에 어떤 한계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아! 저는 성인들도 당시을 위해서 어리석은 짓을 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저분들은 독수리이셨기에 큰일들을 하셨습니다. 예수님, 저는 큰일을 하기에는 너무나 작습니다. 따라서 저의 어리석은 짓은 당신의 사랑이 저를 번제물로 받아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저의 어리석은 짓 안에는 제가 저 거룩하신 독수리의 날개로 사랑의 태양으로 날아오를 수 있는 은혜를 구해주십사고 저의 독수리들에게 간청하는 것도 들어있습니다. 아, 나의 님이시여, 주님께서 원하시는 한, 당신의 작은 새는 힘찬 날개 없이 그대로 지내겠습니다. 당신에게 시선을 모으고 지내겠습니다. 작은 새의 소망은 당신의 거룩한 눈길을 매혹시켜 당신 사랑의 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흠숭하올 독수리시여, 어느 날 당신의 작은 새를 찾아오셔서 사랑의 불로 데려가시어 작은 새가 자신을 번제물로 바친 저 사랑의 타는 심연 속에 영원히 잠기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점선은 성녀가 그은 것)
오, 예수님, 모든 작은 영혼들에게 당신의 자비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이야기해 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저보다 더 나약하고 작은 영혼을 칮으신다면, 그가 당신의 무한한 자비를 온전히 신뢰하고 자신을 맡긴다면, 당신은 제게 베푸신 은혜보다 더 큰 은혜를 그에게 기쁘게 쏟아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 , 예수님! 왜 당신의 사랑의 비밀을 전하고 싶어할까요! 이 비밀을 제게 가르쳐주신 분은 오직 당신이 아니십니까? 그러니 다른 이들에게도 이것을 알려주실 수 있지 않으십니까? 네! 저는 그것을 알고 있어요. 제발 그렇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수많은 작은 영혼들에게 당신의 거룩한 눈길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당신의 사랑에 맞갖은 작은 번제물들의 무리를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작디작은, 성면의 예수 아기의 데레사 수녀, rel. Carm. 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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