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삼위일체의 내재
엘리사벳은 어렸을 때, 자기 수첩에 “너는 나를 너 자신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글을 적어 놓았다. 그 후 『완덕의 길』을 읽으면서 성녀 데레사가 독자들에게 권하는 28장의 다음과 같은 글이 눈에 띄었다. “자기 안으로 들어가, 당신을 창조하신 분께서 계시는 영혼의 자그마한 천국에 당신을 숨기기 위하여 고독 안으로 물러나시오.” 이 글은 엘리사벳이 어릴 때 써 둔 글을 확증해 주었으며 생을 살아가는 동안 영혼의 천국에 계신 삼위일체의 내재라는 자신의 성소를 식별하는 데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걸 생가하면 제 영혼은 신비 중에서도 가장 큰 신비에 대한 원대한 비전, 이 지상에서부터 우리의 내정(內庭)이자 거처요 무한함인 삼위일체께로 저를 데려간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통해 그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살아갑니다. 저는 지금 신성하신 세 위격 안에서 이루어지는 영혼의 변모에 대해 가르치는 우리의 복된 사부 십자가의 성 요한의 아름다운 글들을 읽고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깊은 영광의 심연으로 부름받았는지 모릅니다! 아! 저는 더 이상 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성인들의 침묵과 거둠을 이해합니다. 하느님께서도 신비적인 의미로 이해되는 신부인 영혼과 하느님 사이의 ‘하나됨’이 완성되는 신성한 정상으로 그들을 데려가십니다. 복되신 우리 사부께서는 이로써 성령께서 지극히 경이로운 높은 경지로 영혼을 들어 올리신다고 말합니다. 그럼으로써 성부께서 성자와 더불어, 그리고 성자께서 성부와 더불어 만드시는 같은 사랑의 갈망을 하느님 안에서 만들어 내도록 영혼에게 능력을 부여해 주십니다(편지 185).
엘리사벳은 완전히 자아를 망각함으로써 하느님의 그 본질적인 생명에 친밀한 참여자가 되었다. 이러한 새로은 생활 상태에서 엘리사벳은 신적 사랑의 결실로 고통과 메마름이 교차하는 기쁨과 평화를 체험했다. 이 드높은 그리스도교적 완덕의 상태에서 엘리사벳은 하느님의 시선으로 이 세상의 실상들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판단하였다. 엘리사벳은 너무나 단순해져서 내적 외적 모든 형상들을 순수하고 단순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하느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사람의 맑은 시선으로 황홀경에서 나와 이 세상에 대한 인식으로 옮겨졌다.
“Nescivi(나자신도 더 이상 몰랐네)”라는 이론에서, 십자가의 성 요한의 충실한 제자이기도 한 엘리사벳은 삼위일체와의 사랑의 합일에 깊이 잠기기 위해 죽음, 이탈, 거둠이라는 온갖 단게를 다 거쳐 지나갔다. 『가르멜의 산길』에서 신비박사는 하느님과의 초보적 일치의 성격을 설명해 주고 있다.
영혼과 하느님의 두 의지가 서로 반발하지 않으면서 하나의 짝을 이룰 때, 그리고 영혼이 자신 안에서 반발하거나 거룩한 의지에 동의하지 않는 것을 완전히 없앨 때, 영혼은 사랑을 통하여 하느님 안에서 변화될 것이다. 하느님께서 항상 영혼 안에 머무시고, 당신의 도우심으로 영혼에게 본성적 존재를 주시고 보존해 주신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항상 초자연적인 것을 건네주시는 것은 아니다. 초자연적인 것은 그냥이 아니라 사랑과 은총을 통해서 건네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영혼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가지고 있는 영혼들도 모두 같은 정도의 것을 지니지는 못한다. 보다 많이 앞으로 나아간 영혼에게, 즉 하느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더 맞추어 놓은 영혼에게 하느님께서는 사랑을 더 많이 건네주신다. 이렇게 하느님께 온전히 맞춰졌고 비슷해진 영혼은 전적으로 하느님과 일치되어 있고 초자연적으로 하느님 안에서 변화되어 있다(가르멜의 산길, 2권, 5장 3-4절).
그렇듯 위대한 은총에 대한 응답으로 엘리사벳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매우 열정적으로 살아감으로써 자신의 생애 동안 그리고 죽고 난 다음에도 교회 안에서의 자기의 사명을 깨달았다. “천국에서의 제 사명은 영혼들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가운데 아주 단순하고 온전한 사랑의 움직임을 통해 하느님을 받아들이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또한 그들을 이 위대한 내면의 침묵 속에 지켜주는 일도 제 사명이 될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침묵을 통해 그들 안에 당신을 새겨 주시며 그들을 당신 안에서 변모시켜 주실 것입니다”(편지 335).
삼위일체의 내재
엘리사벳은 진정 관상의 신비가로 살았고, 가톨릭 사상의 가장 숭고한 교의를 체득했다. 자신이 받은 하느님의 생명과 신적 본성의 통교인 성화은총의 힘으로 엘라사벳은 하느님께 알맞은 행위를 할 수 있었으니, 이는 곧 한 분이시며 삼위이신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아시고 사랑하심과 같이 그 역시 하느님을 알고 사랑한 것이었다. 은총을 통해서 성령을 닮은 엘리사벳은 성부와 성자 사이에 흐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랑의 교환에 참여하게 된다.
지복직관의 빛 안에서 영광스럽게 된 이들을 만족시켜 주사는 분께선 믿음과 신비 속에서 당신을 우리에게 건네십니다. 그분은 같은 분이시랍니다! 저는 지상에서 제 천국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천국은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은 제 영혼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걸 깨치던 날, 제 안에선 모든 것이 환하게 비춰졌답니다. 저는 이 비밀을 제가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나지막한 음성으로 전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들 또한 모든 것을 통해 늘 하느님을 받아들임으로써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의 기도가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아버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소서”(요한 17, 23).
믿음은 영혼을 하느님의 현존으로 이끄는 수단이기 때문에 삼위일체와의 친교 생활에 필수적이다. 엘리사벳은 “하느님은 영이시고 우린 믿음을 통해 그분께 나아갈 수 있어”라고 하였다.
제 내면의 왕국이 “영원하고 불사불멸하신 임금님”(1티모 1, 17)의 왕국에 부합하고 비슷하며 하느님의 커다란 빛을 받아들이길 원한다면, 그 밖의 다른 모든 빛을 꺼야 하며 거룩한 도시에서처럼 오직 어린양만이 “유일한 등불”(묵시 21, 23)이 되셔야 합니다. 이 믿음을 보십시오. 제게 드러나는 이 아름다운 믿음의 빛을, 그것은 제가 신랑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저를 비춰줄 유일한 빛입니다... “믿음은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으ㅣ 확증입니다(히브 11, 1)”(마지막 피정, 넷째날).
그러므로 엘리사벳은 믿음을 통해 창조되지 않은 사랑의 영역으로 들어가 자신의 성소를 완전히 인식할 수 있는 기쁨을체험하였다. 엘리사벳은 이렇게 말한다. “마치 내 삶을 종합하는 것 같은 성 바오로의 말씀이 있는데 삶의 순간마다 그걸 쓸 수 있을 것 같아. 이 모든 은총의 물결, 그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 때문(에페 2,4)’이야.” 엘리사벳이 말하는 넘쳐흐르는 특별한 사랑은 자신으로부터 기쁨과 고통이 뒤섞인 실존적 응답을 이끌어내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랑이신 하느님의 호소에 대한 응답으로 그의 전적인 자아포기와 희생이 되는 것이다.
제 영혼 안에 많은 사랑이 있음을 느낍니다. 그건 마치 대양(大洋)과 같아요. 저는 그 안에 깊이 잠기고 사라집니다. 그건 제가 빛 가운데 직접 얼굴을 대면해서 그분을바라보길 고대하며 이 지상 위에서 보는 것입니다. 그분은 제 안에 계시고 저도 그분 안에 있습니다. 저는 오직 그분만을 사랑하고 그분으로부터 사랑받도록 저를 내어드립니다. 언제나 무슨 일을 통해서든 그렇게 합니다. 사랑 안에서 일어나고 사랑 안에서 움직이며 사랑 안에서 잠을 잡니다. 그리고 그분 영혼 안에 제 영혼을 두고 그분 성심 안에 제 마음을 두며 그분의 눈 안에 제 눈을 둡니다. 그래서 그분이 당신과의 접촉을 통해 저를 정화시켜 주시고 비참함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시길 원합니다(편지 177).
이 특별한 사랑의 힘으로 엘리사벳은 자아에서 떠나 넘치는 기쁨중에 삼위일체의 품에 인도되었다. 삼위일체께 전적으로 몰입된 그의 생애는 또한 하느님의 완전함에 대한 사랑의 노래가 되었다. 하느님의 내재의 은헤로 삼위일체의 위격들이 그의 모든 행동원리와 규범으로 자기 영혼과 일치되어 이제는 인간적인 행동 양식이나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신적인 것이 되었다. 엘리사벳은 이렇게 덧붙인다. “십자가의 성 요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악마나 세상이 도달할 수 없는 실체 안에서’ 당신을 영혼에게 통교하십니다... 이렇듯 ‘영혼의 모든 움직임은 신적입니다. 그리고 비록 이는 그분의 것이지만, 또한 영혼의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는 그것을 영혼 안에서 그리고 영혼과 더불어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체험을 즐기는 모든 신비가들은 자기 영혼 깊숙한 곳에서 심원한 즐거움을 누릴 뿐 아니라, 자기들의 모든 사랑을 아낌없이 내어줄 수 있는 상대와 정배가 되어 삼위일체의 현존을 깨닫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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