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간 298> 동생 기트에게

“제 성소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동생에게,
사랑하는 아우야, 네 사랑의 사전에서 ‘낙담’이란 말을 지워버리면 좋겠어. 네가 너 자신을 거둬들이는 데 있어 나약함과 어려움을 더 느낄수록, 그리고 스승님께서 더욱 깊이 숨어계신 듯이 보일수록, 더 많이 기뻐해야 해. 왜냐하면 바로 그때 비로소 너는 그분께 뭔가를 드리기 때문이야. 사랑하면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좋지 않니?
하느님께서는 성 바오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 “너는 내 은총을 낙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ㅋ코린 12, 9). 위대한 성인께서 그걸 아주 잘 이해하셨고 이렇ㄱㅔ 말씀하셨어. ‘나는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왜냐하면 내가 악할 때에 오히려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게 뭐 그리 중요하겠니? 그분은 불변하신 분, 결코 변치 않으시는 분이란다. 그분은 어제 너를 사랑하신 것처럼, 오늘도 그렇게 너를 사랑하셔. 그리고 그렇게 내일도 너를 사랑하실 거야. 설령 네가 그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다 해도, 심연은 또다른 심연을 부르듯, 네 비참함의 심연은 그분 자비의 심연을 끌어들인다는 걸 기억하렴.
그분께서는 나를 고통으로 그리고 나 자신을 선물로 내어주도록 아주 많ㅇㅣ 이끄셔. 내가 보기에, 그건 다름 아닌 사랑의 언어인 것 같아. 아우야, 하나의 희생도 잃어버리지 말기로 하자. 하루 동안 모아들일 수 있는 수많은 희생이 있어. 고통은 아주 강한 끈으로 그분과 너를 하나로 묶어주지 않니? 그래서 그분이 만일 네 언니를 취하신다면, 그건 이 언니가 더 너의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란다. 사랑하는 기트야, 내가 나의 영원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렴. 내 삶이 길지 않을 것 같구나. ... 너를 사멸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곳에 계신 무한하신 사랑의 품으로 들어올려주고 싶단다. 그곳이 바로 우리 두 자매의 고향이며 바로 거기서 그 둘은 언제고 만나게 될 거야.
오늘 밤 이 편지를 쓰면서 내 영혼의 감정이 북받쳐 오른단다. 내 스승님의 ”너무도 크신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야. 네가 언제나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특히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에 그럴 수 있도록 내 영혼이 네 영혼으로 건너가게 하고 싶어.
... 나 역시 잘 숨곤 하시는 나의 스승님을 찾아야 한단다. 그러나 그분이 그렇게 숨어계시면 믿음을 더 불태우며, 사랑으로 그분을 만족시켜 드리기 위해 오히려 그분의 현존을 누리지 못하는 걸 기뻐해.
내 곁에 가까이 오도록 너를 초대하고 싶어. 이 작은 수방은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은 검은 나무 십자가가 두드러져 보이는 하얀 벽과 함께 아주 신비롭고 고요하단다. 그 십자가는 바로 내 것이야. 난 십자가에 못박히신 나의 신랑을 닮기 위해 매순간 나를 그 십자가에서 희생제물로 바쳐야 해. 성 바오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 ”제가 원하는 것은 그리스도 바로 그분을 아는 것이며, 그분의 고통에 동참하고 그분의 죽음을 닮는 것입니다“(필리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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