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간 249> 앙글레 부인에게
오직 하느님만으로 충분합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자매이자 아주머니께, 저는 아주머니의 영혼이 온전히 자유롭기를, 그리고 크신 사랑으로 아주머니의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과 온전히 하나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아주머니, 행복과 평화의 비결은 자신을 잊어버리는 데, 자신을 비우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자신의 육체적, 윤리적 비참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건 아닙니다. 성인들은 몸소 이 고통스러운 상태를 거쳐 갔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매순간 이 모든 것을 놓을 줄 알았습니다. 그것으로 영향 받았다고 느꼈을 때 그분들은 결코 놀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시편 저자가 노래하듯이, “자신들이 어떤 진흙으로 만들어졌는지(102, 13)”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편 저자는 이렇게 덧붙여 말합니다. “하느님의 도움으로 흠없이 있겠습니다. 그리고 제 안에 있는 제 죄의 바닥으로부터 저를 간직하겠습니다”(17, 24). .. 그러니 아주머니를 십자가에 못박는 손 밑에서 의지적으로 기쁨 중에 머물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매번의 고통과 시험을 “사랑의 시험”으로 바라보십시오.
대면하는 모든 일을 통해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온전한 의탁의 마음으로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무게를 느끼고 영혼이 지치더라도 결코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오히려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그리스도께 믿음과 사랑으로 호소하십시오.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 28). 결코 비참한 생각이 용기를 갖고 하는 일을 거꾸러뜨리게 하지 마십시오. 성 바오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 20). 제 생각에, 아주 나약하고 심지어 많은 허물이 있는 영혼은 좀 더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잊고 하느님의 품에 자신을 내던지고자 영혼이 하는 이 행위는 자신 안으로 굽어드는 것, 그리고 영혼이 자신의 나약함과 함께 살아가게 하는 모든 시험보다 훨씬 더 하느님께 영광과 기쁨을 드립니다. 그 영혼의 중심에는 매순간 그를 정화시키려 하시는 구세주가 계십니다.
아주머니, 에수님께서 당신 성부께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요한 17, 2) 하고 말씀하신 아름다운 장을 기억하세요? 그분께서 아주머니에게서 하시려는 일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분께선 아주머니가 모든 걱정을 놔둔 채 매순간 자신에게서 나옴으로써 그분이 숨어계신 마음의 중심에서 절대 고독을 향해 자신을 거두어들이길 바라십니다. 비록 그분을 느낄 순 없지만 분명 그분은 거기 계십니다. 그분은 아주머니를 기다리며, 아름다운 전례에서 노래하듯, 아주머니와 함께 “놀라운 교환”(주님 봉헌 축일 저녁기도 제1후렴), 다시 말해 신랑과 신부 사이에 깊은 친밀을 이루길 바라십니다. 그분은 이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신부를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 그리고 그를 혼란스럽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고자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요?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려 왔다”(요한 12, 47). 그, 무엇도 아주머니가 그분께 가는 데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아주머니께서 활활 타오르든 아니면 용기를 잃든 그런 것은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의 상태에서 또 다른 상태로 넘어가는 게 유배의 법칙이랍니다. 그러니 그분은 결코 변치 않으신다는 걸 믿으시면 좋겠어요. 그분은 당신의 선하심으로 아주머니를 일으켜주시고 당신 안에서 확고하도록 아주머니를 향해 숙이십니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만일 공허감과 슬픔이 아주머니를 힘들게 한다면, 올리브 동산에서 성부께 말씀하시던 스승님의 고뇌와 하나되시길 바랍니다.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해 주십시오”(마태 26, 39).
사랑하는 아주머니,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게 아주머니에게 어려운 것처럼 보일 거에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그게 단순하다는 걸 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제 ‘비결’을 알려드릴까 해요. 아주머니 안에 사시는 하느님을, 그리고 아주머니는 바로 그분의 성전이라는 걸 생각하세요. 그렇게 영혼이 점차 그분의 감미로운 동반과 더불어 사는 데 익숙해지면, 사랑의 하느님께서 당신의 거처를 마련해 놓으신 작은 천국이 자신 안에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자신이 숨쉬는 신성한 환경에 있게 되며 심지어 몸은 이승에 있지만 영혼은 베일과 구름 저 너머 불변하는 그분 안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게 비참한 아주머니에게는 가당치 않다고 말씀하진 말아주세요. 왜냐하면, 그와는 정반대로, 그건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분께 나아갈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정화되어야 할 우리의 비참함이 아니라 온전히 순수하시고 거룩하신 그분을 바라보기로 해요.
성바오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모상이 되도록 예정하셨습니다”(로마 8, 29).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이면 거룩한 예술가께서 아주 아름다운 당신 작품을 만들기 위해 끌(영혼의 불꽃 3, 57)을 필요로 하신다고 생각하세요. 그러고는 아주머니에게 일하시는 그 손 아래 평화 중에 머무세요.
아기에수의 데레사라고 불린, 성성의 향기 속에서 24살에 임종하신 가르멜 수녀 한 분을 특별히 아주머니께 맡겨 드려요. 그분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이 이승에서 선을 행하며 자신의 천국을 보낼 거라 말씀하셨답니다. 그분의 카리스마는 영혼들을 넓히고 사랑과 신뢰 그리고 의탁의 물결 위로 그들을 내맡기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을 잊어버리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행복을 발견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그분께서 성인들이 이루시는 지식을 우리를 위해 얻어주시고 영혼에게 많은 평화와 행복을 주실 수 있도록 저와 함께 매일 그분께 기도드리지 않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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