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소개해 드린 적이 있는 서울 가르멜 2대 원장을 지내셨던 이렌 바스탱 아기예수의 데레사 수녀님의 작은 수첩입니다. 그리고 사진은 1948년 혜화동 서울 가르멜. 맨윗줄 왼쪽 끝에 저희 수도회 창설자 데레지타 수녀님, 그리고 두줄 아래 안경 쓰신 분이 아기예수의 데레사 수녀님이세요. 수녀님은 공산군이 잡으러 왔을 때 수도복을 입으시며 당신의 수첩 두 권과 묵주를 데레지타 수녀님께 주시면서 벨기에에서부터 수도생활 중에 쓴 영적 메모이니 너에게 도움이 되었음 좋겠다 하시고, 자매들을 잘 돌보아줄 것을 부탁하고 죽음의 행진으로 떠나셨습니다. 화관 쓰신 분 왼쪽 수녀님이 죽음의 행진을 함께 하시다가 먼저 돌아가신 메헤틸드 초대 원장 수녀님이세요.
저희는 이 수첩의 내용이 궁금했고, 고심 끝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두봉 주교님을 찾아가 뵙고 도움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교님께서 이 내용이 너무나 좋으니 꼭 번역이 되어나왔으면 좋겠다.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시는 거에요. 아! 얼마나 다행스럽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만만치 않은 이 작업을 할 분을 물색하신 끝에 카르투시오 회 베네딕타 수녀님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주교님, 당신은 참으로 교회의 큰어른이십니다! 또한 믿는 이와 믿지 않는 모든 이에게 영혼의 아버지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처음 주교님을 뵈었을 때가 작년 7월이었는데, 그 이후 베네딕타 수녀님이 현대어로 번역하시고 주교님이 감수하시고 .. 그 작업을 계속 함께 해주신 것이었어요. 저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이었던 거에요. 그런데 얼마마한 정성과 열정을 쏟으셨는지...! 저희는 아기예수의 데레사 수녀님께 당신이 천국에 계시다면 이 일이 잘 되게 해주시길 기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저희의 생각이 미칠 수 없을 만큼의 보배로운 만남과 여정이 이어지고 있음을 성령께서 보여주고 계신 것을 느껴요.
카르투시오 수녀님들은 다른 수도회와는 교류가 없으신 듯 했어요. 저희가 가면 얼마나 환대해 주시는지.. 처음에 갔을 때도 가족처럼 여기시고 봉쇄 안에 구석구석 안내해 주시고 생활공간들을 경계없이 보여주시고, 맛있는 사과파이을 만들어주셨어요. 공동체 자매들에게도 이 맛을 보여주고 싶다 말씀드렸더니, 그 다음에는 이 큰 파이를 세 판이나 만들어 부활 선물로 주셨답니다! 저희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과 하나하나 놓으셨다고 해요.
수녀님들은 각 개인 독방-방이라기 보다 집 한 채씩이라고 보는 편이 나을 것 같아요-이 있고 텃밭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처음에 수도원 설계할 때 거름을 어떻게 들여갈지 예상을 못하셨대요. 그래서 거름을 일일히 퍼다가 내부 복도를 통해서 각 수방으로 나르시더라고요. 안타까웠어요. 그리고 각 방에 배달하는 식사 가방!
수녀님들과 교류하게 되어 친구를 얻은 듯 참 기쁩니다. 수녀님들의 삶이 힘들지만 아름답고, 저희와 공유할 수 있는 부분도 많고요. 저희 농산물도 갖다 드리면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몰라요.
이 수첩이 책으로 나오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수고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수첩과 함께 싣고 싶은 내용들도 검토하고 있고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리며, 저희 수도원과 함께 교회에 의미있는 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모든 일을 이루어주시고 함께 해주시는 주님께 감사, 찬미 드립니다!
드디어 데레사 원장 수녀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되었다. 음식이라곤 소금기 없는 좁쌀 끓인 것뿐이라 하도 물러서 구역질이 나고 매스꺼웠다. 원장 수녀는 "제게 권하지 말아주세요. 그것 보는 것도 못하겠어요."라고 하였지만 함께 있던 이들에게는 무얼 하나 다른 걸 줄 게 없어서 딱하기만 하였다. 언 배추가 약간 들어간 국만을 마시고는 돗자리도 없는 흙바닥 위에 그냥 누운 채 며칠을 보냈다. 데레사 원장 수녀는 죽음을 앞에 두고 착각을 일으킴이 없이 자신을 준비했다. 그러고 나서 다른 수녀들 중 한 사람에게 말했다. "내가 이대로 가는 게 더 좋겠어요. 내가 서울에 돌아가면 착복과 서원을 준비하여 결정을 해야 할 텐데 그 책임이 내겐 너무 무겁습니다. 내 책임은 끝났습니다." "죽음을 생각지 마시고 사실 것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기운을 차리시고 용기를 가지셔야지요. 메히틸드 어머님을 여읜 것만으로 넉넉합니다. 우리 어머님이 안 계시면 머리 없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가르멜에 돌아가면 빨리 선거를 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실 겁니다."
11월 28일 저녁, 아주 명료한 의식으로 남은 수녀들에게 축복을 해주고는 눈을 감고 반 잠을 자는 것 같았다. 한참 있다가 갑자기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마도 '오소서, 성령이여'를 라틴 말로 한 것 같다. 이게 마지막 숨이 붙어 있는 표적이었다. 혼수상태가 시작되었다. 꼼짝 못하고 말도 없이 지냈다. 사제 한 명이 와서 사죄경을 염해 주고 납치 생활 중 늘 함께 있었던 샬트르 성 바오로회의 외제니 수녀가 몇 방울의 물을 넘기게 하였지만 허사였다. 메헤틸드 수녀처럼 영혼은 육신에서 떠나고 있었다. 두 번째 떠나는 것을 지켜보며 쓰라린 이별을 하는 다른수녀들은 형언키 어려운 슬픔 속에 있었다.
29일부너 30일 밤사이 시간이 갈수록 숨결은 가냘파지고 마지막 숨길은 잦아드는 듯 들리지 않았다. 파란만장했던 데레사 원장 수녀의 이 지상생활은 드디어 끝이 나 천국 영광의 광휘 속에 들어갔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 7). 이 사랑에 대한 신앙은 그의 삶의 태양이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1요한 4, 16). 성 요한의 이 말씀은 특전을 받은 영혼인 그에게 들어맞는다. 먼저 마지막 세수를 시키고 거친 모직 성복과 긴 성의를 바로잡고 그의 봉헌의 표인 수건을 씌우고 손에는 영원히 하느님의 것이 되는 서약을 할 적에 받은 십자고상을 쥐어 주었다. 외제니 수녀는 "그는 정말 예쁘십니다. 기품이 있고 위엄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진정한 가르멜 수녀였다. 마당에 내놓고 병사들에게 물었더니 별들을 쳐다보고 새벽 두 시경이라고 했다. 물론 메히틸드 수녀가 묻힌 곳에서 좀 떨어진 곳에 매장했으리라고 추측할 뿐이다.
염포도 없고 성수도 없는 극도의 청빈이었다. 모든 것을 바친 사람답게 지나가고 말 이 현세에 대한 가장 적나라하고도 아름다운 떠남이었다.
『귀양의 애가』(가르멜 수녀들의 북한 피랍기) , 마리 마들렌 지음, 서울가르멜여자수도원 엮음, p.299-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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