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설자 박영희 데레지따 수녀님은 1945년에 서울 가르멜에 입회한 후 가르멜 정신을 깊이 배우도록 장상들에 의해 1952년에 벨기에 비르통 가르멜로 보내졌고, 그 당시 학력이나 지참금 등의 이유로 가르멜 생활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한국에 새로운 가르멜을 창설하도록 임명받았다.
1972년 청주교구 옥천에서 처음 시작하였다가 1974년 마산교구 故 장병화 주교님의 허락으로 남지 공소에 자리잡게 되었다. 맨발 가르멜 소속은 아니지만 성조 엘리야로부터, 그리고 사모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 사부 십자가의 요한 성인에게로 이어지는 가르멜 정신을 살아가는 봉쇄 수도원으로서, 좀 더 독자적이고 한국적인 봉쇄 수도원이라 할 수 있겠다.
삼위일체 하느님을 찬미하는 순수관상 생활을 지향하며, 수녀들은 교회와 세상을 위해 침묵 안에서 기도와 희생의 숨은 생활로 자신을 봉헌하며, 특별히 성모님을 공경하는 회헌의 지향에 따라 모든 것이 “주님의 뜻대로(Fiat Voluntas Tua)”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면서 나날이 가르멜 성소의 마리아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지속적인 부르심을 받는다.
'상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회헌의 정신에 따라 쌀, 콩, 보리, 밀, 과일과 야채 등 대부분의 먹거리를 농사로써 자급자족의 생활을 한다. 수녀들은 약 2만 평 정도의 논, 밭과 과수나무들을 거의 모든 일을 직접 하며 돌본다. 농사를 통해서 침묵과 순종과 형제애를 배우고, 피조물에 담긴 하느님의 마음을 읽고 닮으려 노력하며, 수확물을 은인들과 가난한 이들과 함께 나누는 보람을 얻는다.
건물의 노후가 심각하여 비가 올 때면 경당 천장에 비닐을 쳐야 했고, 수녀들은 이불 위에 비닐을 덮고 자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주님의 자비와 수녀들의 간절한 기도와 국내⋅외 2만 여 은인들의 도움으로 2014년에 새 성전을 마련하는 큰 기쁨을 가졌다. 건축중에 시공사가 이윤이 안된다고 떠나는 바람에 큰 어려움에 부딪혔으나, 원장 수녀가 나서서 분야별로 직접 업체들을 알아보고 계약을 해서 직영으로 공사감독을 해냈고, 수녀들이 공사장에 투입되어 주님의 크신 자비와 은총을 체험하며 공사를 마무리하는 감사와 감동의 대여정이었다.
넓은 대지와 함께 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자유로운 분위기와 봉쇄생활이라는 엄격함의 조화를 통해서 수녀들은 자신들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고독의 공간을 찾고, 동시에 공동체 생활을 통해 하느님께 자신을 내어드리고자 하는 원의를 지속적으로 발하게 되는 것이다. '봉쇄생활'이라는 성소는 자신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독을 온전히 지닐 때 인간을 더욱 이해하고 세상을 더욱 품게 되는, 하느님이시며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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