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여정
엘리사벳 생애의 중심사상을 알았으므로,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와 동정 마리아와 함께 자신을 하느님의 세 위격과의 친밀한 일치에로 인도해 주는 영적인 여정을 그와 함께 갈 수 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성미가 급하고 쾌활하며 충동적이었던 엘리사벳은 불굴의 의지와 강한 성격을 드러내면서도 사물의 비밀을 꿰뚫어볼 수 있을 정도로까지 민감하였다. 끊임없이 언제나 접근할 수 있는 하느님의 은혜는 첫고해와 첫영성체를 맞은 엘리사벳 안에 두드러진 변화를 일으켰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당신 거처 마련하셨네 하느님께서 내 마음 차지하셨네 이제부터 신비로운 대화를 신적이고 감미로운 대화를 오직 그분께 내 생명 드리길 원하네 그분의 크신 사랑 조금이나마 돌려드리기 위해 성체 안에 계신 사랑하는 임.(첫영성체 기념 시, 1898. 4. 19)
성화은총을 가득히 받은 엘리사벳은 철저하게 변화되어 이제는 사랑의 다스림을 받기로 맹세하였다.
엘리사벳은 직접 이렇게 말했다. “나는 완전히 하느님의 것입니다. 파티에서나 세속의 모임에서도 나는 스승님께 집중해서 다음 날 모실 성체에 대한 생각에 깊이 몰두되어, 내 주변에서 되어 가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 없이 아득히 떠나 있었습니다.”
만일 그 분을 위해 행동하고 언제나 그 분의 거룩한 현존 속에 살며 영혼의 가장 내밀한 곳을 관통하는 그 거룩한 눈길 아래 산다면, 그 무엇도 우리를 그분으로부터 떼어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세상 한가운데서라도 오직 그분의 것이 되고자 하는 마음의 고요함 속에서 그분을 귀기울여 들을 수 있습니다.(편지, 1900. 12. 1)
엘리사벳은 만 14세가 되기 전에 예수님과 성모님께 동정서원을 했다. 엘리사벳은 이 서원을 성모님의 축일 때마다 새롭게 봉헌함으로써 자기 안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의 활동에 전적인 효험을 드러냈다.14살 쯤에 영성체 후 감사기도를 할 때 엘리사벳은 가르멜을 향한 강한 이끌림을 체험했다. 그 순간부터 엘리사벳은 “엘리야가 가르멜의 자녀들에게 남겨주신 유산,” 하느님과 일치하고픈 자신의 원의를 이룰 수 있기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가르멜에 들어가기로 갖은 노력을 다했다. 참으로 엘리사벳이 이룬 하느님과의 일치는 지상 생애에서 중주가 되었다. 엘리사벳은 어머니의 허락을 얻은 후, 1901년 8월 2일에 디종 가르멜에 입회하여 삼위일체의 마리 엘리사벳이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엘리사벳은 ‘하느님의 집’이라는 뜻을 지닌 가지 이름대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이 구절을 자기 모토로 택하고 사랑과 끊임없는 희생적인 삶으로 자기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 중에 그 뜻대로 따랐다.
엘리사벳은 기도와 일상의 업무 그리고 유효성에 있어서 훌륭한 관상가요 십자가의 성 요한의 참된 딸로서 하느님의 거룩함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침묵과 어둠 속에서 다른 자매들에게 마음을 열고 관대하게 대하며, 만사에서 아버지를 드러내 보이는 그리스도를 자신이 완전히 닮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동료 수도자는 몇 년 뒤에 당연히 아러한 증언을 할 수 있었다. “서원을 하고 난 지 3년이 된 그녀에게 분명해진 것은 그 마음 안에 성 바오로의 말씀처럼 하늼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숨어 살기 위해 침묵 속에 스스로를 숨기는 데 충실함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엘리사벳은 자신이 바라던 성성에 이르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내 정배의 고통에 참여하고 있고 또 그분과 함께 구속자가 되기 위해 그분께 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봐. 성 바오로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 현존 가운데 아신 이들을 당신 성자의 모습을 닮도록 예정하셨다고 말씀하셔. 하느님께서 나를 예정해주셨고 당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인장으로 날인해 주셨다는 걸 생각하며 모성 가득한 엄마의 마음이 기쁨으로 충만하면 좋겠어”(편지 1906, 7, 18).
엘리사벳에게는 십자가가 이별의 표가 아니었다. 지복직관에 든 행복한 이들이 고대하는 영원한 영광을 미리 함ㄲㅔ나누기 위해 자발적으로 앞장서 걸어간 낯익은 길이었다. 자기 육신의 고통으로 그리스도의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것은 엘리사벳에게 삼위일체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신비로 인도해 가는 훌륭한 길을 의미했다. 엘리사벳은 위중한 병세로 생애에서 마지막 몇 달 동안에 겪어야 했던 무시무시한 고통스로운 순교를 큰 신앙으로 맞아들였다. 엘리사벳은 가장 심한 고통을 겪는 동안 이러 글을 남겼다. “알 수 없는 기쁨을 맛보고 체험하고 있지요. 사랑하는 제르멘, 고통의 기쁨은 너무도 그윽하고 달콤합니다.,,, 죽기 전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안에서 변모되는 꿈을 꿉니다. 그리고 그 꿈은 고통 중에 있는 제게 많은 용기를 줍니다”(편지, 1906, 10. 10경). 극도의 고통을 겪던 마지막 생애 중 며칠 사이에 엘리사벳은 가르멜의 성소, 곧 영광의 찬미와 연관된 자기 이름의 숨은 의미를 충분히 깨닫기 시작했다.
성 바오로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현존 가운데 아신 이들을 당신 아드님의 모상을 닮도록 예정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제가 저 자신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흠숭하올 제 스승님을 닮고 그분과 하나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영광의 찬미라는 제 소임을 완수하고 성부의 집에 있는 영원한 안뜰에서 그 찬미가를 노래하길 고대하며 영원한 지성소에서 노래하게 될 겁니다“(편지, 1906. 8. 15).
믿기 어려운 만큼 엄청남 관용과 용덕을 지니고 성령의 이끄심에 유순히 따르는 엘리사벳은자기 몸에 그분의 거룩한모습을 새기게끔자신을 송두리째 맡겨 드렸다. 그러므로 일치와 변화를일으키시는 은총의 힘으로 엘리사벳은 모든 것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닮기에 이르렀다.
성 바오로께서는 다음의 말씀을 통해 위에서부터 한 줄기 빛을 제게 선사해 주십니다. “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자라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에페 3, 16-17). 사랑에 뿌리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는 것, 제가 보기에 이것은 영광의 찬미라는 직무를 훌륭히 완수하기 위한 조건입니다. 이처럼 왕-에언자를 통해 찬미되어 온 ‘하느님의 오묘함들’을 통찰하고 그 안에 사는 영혼은 이와 함께 단순함 자체이신 분을 닮도록 선물로 주어지는 맑은 시선과 더불어 ‘그분 안에서 그분과 함께 그리고 그분을 통해’ 모든 것을 하게 됩니다. 이 영혼은 매번의 움직임, 매번 쉬는 숨과 더불어 자신의 일상적인 행위들을 통해 사랑하는 하느님 안에 더욱 깊이 ‘뿌리내립니다.’ 이제 만물은 이 영혼 안에서 완전히 거룩하신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이처럼 그는 영원히 거룩하신 분을 노래하느 끊임없는 영광의 찬미입니다.(마지막 피정, 여덟째 날).
엘리사벳의 생애는 엄청남 고통의 침상에서 지은 수덕 신비의 찬미가와도 같다. 그것은 마음의 침묵 속에서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정배이신 하느님과 자신이 이미 하나가 되어 부른 찬미가이다. “영광의 찬미, 그것은 성령의 신비로운 터지 아래 있는 칠현금처럼 침묵하는 영혼으로서, 성령께서 그 안에서 신적인 화음들을 끌어내실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하는 유순한 영혼을 말합니다. 이 영혼은 알고 있습니다. 고통이란 보다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기 위한 현(絃)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이 고통을 더욱 감미롭게 하느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도구로 여깁니다”(믿음 안에서 천국, 열째 날).
영광의 찬미는 자신의 봉헌 생활을 완전히 불태워 찬미의 희생물로 봉헌한다. 이제야 엘리사벳은 체력의 한계와 고통에 목표에 거의 다다른 상태에서 삼위일체와의 친밀한 합일을 깨달으며 1904년 11월 21일에 삼위일체께 드리는 기도를 지어 봉헌한다.
오, 나의 하느님, 흠숭하올 삼위일체시여, 제 영혼이 마치 이미 영원 속에 있듯이, 제가 당신 안에 확고하고 평온하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저를 온전히 잊게 하소서. 그 무엇도 제 평화를 방해하지 않게 하시며 제가 당신을 떠나지 않게 하소서. 오 변함없는 나의 하느님, 매순간 당신 신비의 오묘함 속으로 저를 더욱 이끄소서. 제 영혼을 평온하게 해 주시며, 저로 하여금 당신의 천국, 당신의 사랑받는 거처, 그리고 당신의 안식처가 되게 하소서. 제가 당신을 홀로 버려두지 않게 하시며 당신 곁에 온전히 머물게 하소서. 또한 제가 믿음 가운데 깨어있고 당신을 온전히 흠숭하며 당신의 창조활동에 저를 온전히 내어놓게 하소서.
갈바리아에서 홀로 고통의 십자가 위헤 못박히는 강렬한 위기가 지나고 난 엘리사벳은 사랑의 불이신 우리 주님께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조금씩 자신을 불살라주시길 청한다. 엘리사벳은 이 세사을 더나기에 앞서 자시이 사랑했던 모델, 성모님의 현존을 생생하게 인식하였는데, 성모님께서는 마침내 그의 손을 잡고 삼위일체의 신비 안으로 데려가 주셨다. 엘리사벳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삼위일체의 찬미와 영광의 이 지상 삶에 대해 나지막한 소리로 “나는 빛에로, 사랑에로, 생명에로 갑니다”라는 결론의 말을 남겨놓았다. 이 지상에서 영적 여정을 마치고, 엘리사벳은 약속대로 천국에서 자신의 소명을 계속하고 있다. “천국에서 제 사명은 영혼들이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가운데 아주 단순하고 온전한 사랑의 움직임을 통해 하느님을 받아들이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또한 그들을 이 위대한 내면의 침묵 속에 지켜주는 일도 제 사명이 될 겁니다.”(편지, 1906.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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